우학리교회
여수 금오도의 우학리교회는 한국 장로교 최초의 목사 7인 가운데 한 사람인 이기풍 목사가 마지막으로 시무한 교회다. 젊은 날 평양에서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며 복음을 훼방하던 그는 회심 후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어 1907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, 이듬해 한국 교회가 파송한 첫 선교사로 제주에 건너가 복음을 전했다. 사울이 바울이 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생애는 이후 전남의 여러 교회와 남해의 섬들을 섬기는 목회로 이어졌다. 노년에 부임한 우학리교회에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고, 그 후유증으로 1942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 순교자로 기려진다. 평양에서 제주로, 다시 남해의 작은 섬까지 이어진 한 사람의 순례는 한국 교회 1세대 신앙의 궤적 그 자체다. 섬마을 언덕에 선 교회에서는 이기풍 목사의 신앙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.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순례길이지만, 그 수고만큼 첫 한국인 목사의 마지막 목회지가 주는 감동은 깊다.
Uhangni Church, Geomundo/Geumodo — Jeonnam Yeosu-si
Uhangni Church on Geumodo Island, Yeosu, was the final pastorate of Yi Gi-pung, one of the first seven Korean Presbyterian ministers ordained in 1907 and, the following year, the Korean church's first commissioned missionary, sent to Jeju. As a young man in Pyongyang he had thrown stones at missionaries; his converted life echoes Saul become Paul. In old age he served this island congregation, was tortured for resisting Shinto shrine worship, and died here in 1942, honored as a martyr. Reaching the church requires a ferry, but the quiet weight of Korea's first pastor's last parish rewards the journey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