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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학리교회

교회개신교 전남 여수시 · 1906 · Uhangni Church, Geomundo/Geumodo

여수 금오도의 우학리교회는 한국 장로교 최초의 목사 7인 가운데 한 사람인 이기풍 목사가 마지막으로 시무한 교회다. 젊은 날 평양에서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며 복음을 훼방하던 그는 회심 후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어 1907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, 이듬해 한국 교회가 파송한 첫 선교사로 제주에 건너가 복음을 전했다. 사울이 바울이 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생애는 이후 전남의 여러 교회와 남해의 섬들을 섬기는 목회로 이어졌다. 노년에 부임한 우학리교회에서 그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고, 그 후유증으로 1942년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 순교자로 기려진다. 평양에서 제주로, 다시 남해의 작은 섬까지 이어진 한 사람의 순례는 한국 교회 1세대 신앙의 궤적 그 자체다. 섬마을 언덕에 선 교회에서는 이기풍 목사의 신앙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날 수 있다.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순례길이지만, 그 수고만큼 첫 한국인 목사의 마지막 목회지가 주는 감동은 깊다.

✝ 순례자의 묵상복음을 훼방하던 청년이 첫 목사가 되고, 마지막 숨까지 섬의 양떼를 지켰습니다. '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'(딤전 1:13)이라는 바울의 고백이 이기풍의 고백이기도 합니다. 하나님은 지금의 나가 아니라 바꾸실 나를 보고 부르시는 분임을 기억합시다.

Uhangni Church, Geomundo/Geumodo — Jeonnam Yeosu-si

Uhangni Church on Geumodo Island, Yeosu, was the final pastorate of Yi Gi-pung, one of the first seven Korean Presbyterian ministers ordained in 1907 and, the following year, the Korean church's first commissioned missionary, sent to Jeju. As a young man in Pyongyang he had thrown stones at missionaries; his converted life echoes Saul become Paul. In old age he served this island congregation, was tortured for resisting Shinto shrine worship, and died here in 1942, honored as a martyr. Reaching the church requires a ferry, but the quiet weight of Korea's first pastor's last parish rewards the journey.

✝ PILGRIM'S REFLECTIONA young man who mocked the gospel became Korea's first pastor and kept his island flock to his last breath. Paul's confession — 'I was once a blasphemer and a persecutor... yet I was shown mercy' (1 Timothy 1:13) — was Yi Gi-pung's as well. God calls us not for who we are, but for who He will make us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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